[충청뉴스 유규상 기자] 아산시 온양5동에는 기산통이 있다. 현재의 아산시 이전에 아산군으로 자치단체 이름이 명명되었을 때에는 행정 편제상 기산리로 불리워졌고 기산통은 다시 1통과 2통으로 나누어 지는데 1통에는 성미, 울바위, 두집매의 자연부락이 있고, 2통은 거리미라는 이름으로도 불렀다.
기산통을 뒤에서 지탱하고 있는 조산(朝山)역할을 하는 보갑산은 그 정상을 중심으로 동으로는 온양이, 서쪽으로는 도고면, 남쪽으로는 송악면, 북쪽으로는 신창면과 인접하고 있으며 주민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전통적인 농촌마을이나 인근에 경찰대학이 들어서고 개발행위가 진행되면서 주변에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기산2통 거리미 마을에서 전통적으로 전래되어 내려 오고 있는 동제는 장승제 혹은 노신제가 있는데 금년도에는 지난 3월 2일(음력으로 1월 14일) 오후 7시에 마을입구의 장승 앞에서 제사를 올렸다.
또한, 거리미 마을 입구(들머리라고도 한다)는 세개의 갈림길이 있고 여기에는 당시 600여 년된 느티나무 고목이 있어서 이 나무를 중심으로 장승에 매년 음력 정월 열 나흔날(1월 14일) 초저녁에 제사를 지내 지금까지 이 전통이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느티나무 고목은 정자나무라고도 호칭하였으며, 중심 줄기는 짧은 편이지만 굵기는 어른들 6명 정도가 팔을 벌려야 닿을 정도로 컸고 1960년도까지는 나무와 잎이 무성하게 유지되었지만 이후에 죽기 시작하였고, 마을에서 새마을 사업을 추진하면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목재로 팔아 없어졌고 대신 그 자리에는 마을 정자를 세웠다.
장승의 제작과 관리과정에 관해서는 상세하게 알수는 없지만 마을에 사는 어르신들의 증언에 따르면 예전에는 매년 나무로 새로 깍아 세우고 오래된 장승도 함께 그대로 두어서 여러개의 장승들이 많았으나 점차 매년 깍기도 번거러워 졌고 유지하기도 어려워서 2008년 1월에 돌로 만든 장승으로 대체되었고 장승의 위치도 현재의 장소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전해진다.
마을 길 양쪽에는 황토 흙을 조금씩 퍼다가 크게 한발 간격으로 10여개 무더기를 만들어 마을에 들어오는 잡귀나 액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으며, 당시에는 제사를 지내는 제관들은 찬물로 목욕을 하였으나 지금은 온양시내에 나가 목욕을 하더라도 마음의 신심은 부정함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
제사에 쓸 제물 중 쌀은 3되 3홉으로 집시루에 백설기를 찌며, 떡 시루의 손잡이에는 실타래를 묶고 통북어 두마리를 꽂고, 양초도 2개, 대추, 밤, 사과, 곶감을 준비해 해가 어둑해 지기 시작할 즈음에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다.
제사의 순서는 장승 앞에 제상을 펴고 흰색의 종이를 깔고 그 위에 제물을 배치한다. 이어서 병풍을 치며, 촛불을 켜고 제관은 무릎을 끓고 향을 피우고, 술을 올리고 나서 재배한다. 제관이 엎드린 상태에서 축관이 축문을 읽고 술을 다시 올리고 재배한 다음 소원을 적은 종이(소지)를 모두 태우게 되는데 이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린다.
제사가 종료되면 제물을 음복하고 모닥불을 피우며 풍장도 치면서 마을의 평온과 무병장수와 화합을 기원하였다. 마을에서는 1968년도에 만든 오래된 축문을 참고로 하여 당시 상황에 맞게 변형하여 매년 축문을 새로 작성하여 사용하고 있다. 본 기자가 당시의 축문을 찾으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본은 구하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지만 2020년도 온양문화원에서 발간한 아산의 동제 1편 43쪽에 기록된 내용을 구해서 여기에 편집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구상 기산2통 통장은 " 마을의 장승제가 언제부터 지내 내려 왔는지 연원을 알지 못할 정도로 아주 오래된 마을의 제사"라고 말하고, "마을에서는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절에도 한번도 거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장승제사를 지내 왔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