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어느 고등학교 교가 가사 중에 '자유와 관용을 깨우치도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저 의례적인 가사의 일부로 여겼을 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관용이란 무엇일까? 다시 새삼스럽게 생각해 본다. 관용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관용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깊이 이야기해 보면 용서와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관용을 베풀다"라는 표현에서 이미 그 혼란이 시작된다. 마치 관용이 누군가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는 것,또는 관대한 마음으로 상대를 포용하는 것처럼 이해되는 것이다.
하지만 관용(tolerance)은 용서(forgiveness)나 너그러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다시 말해 관용은 용서가 아니다. 용서는 잘못에 대한 반응이지만, 관용은 차이에 대한 태도다.
용서는 도덕적 판단을 전제로 하지만, 관용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원칙이다. 누군가 나와 다른 신념을 가지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 '잘못'은 아니다. 관용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즉, 관용은 '다름'을 최대한 폭넓게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관용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소극적 관용과 적극적 관용이다. 소극적 관용은 "싫지만 참는다"는 태도다. 상대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말리지 않고, 내 기준에는 맞지 않지만 묵인하는 것이다.
이는 여전히 "내가 옳고 너는 틀렸다"는 위계를 전제한다. 반면 적극적 관용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태도다.
내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수용하고, 다양한 옳음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진정한 관용은 후자다. 전자는 아직도 "나"를 중심에 둔 시혜적 태도이며, 관용이라기보다는 인내에 가깝다.
이는 관용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긴 논의를 펼쳐왔는데, 반면 용서에 관해 글을 쓴 학자는 그리 많지 않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존 로크의 『관용에 관한 편지』, 볼테르의 『관용론』, 밀의 『자유론』에 이르기까지. 이는 단순히 학문적 관심사를 넘어, 관용이 그만큼 중요한 철학적·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관용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7세기 철학자 존 로크는 『관용에 관한 편지(A Letter Concerning Toleration, 1689)』에서 종교적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사회 평화의 기초라고 주장했다.
유럽 전 지역에서 벌어진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30년 전쟁(1618-1648)으로 유럽 인구의 1/3이 죽었고, 국교회 왕당파와 청교도의 의회파가 싸운 영국 내전(1642-1651)에서 찰스 1세가 처형(1649)되었으며, 1685년 프랑스가 낭트 칙령을 폐지하며 개신교 관용을 철회하였다.
이렇게 종교전쟁으로 피로 얼룩졌던 유럽에서,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한 사회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제안하기 위한 글이었다.
로크에게 관용은 단순히 "다른 것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할 권리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볼테르는 더 나아갔다. 1761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개신교도 장 칼라스가 억울하게 사형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려 해서 죽였다는 터무니없는 혐의였다. 증거도, 목격자도 없었다. 다만 그가 개신교도였을 뿐이었다.
볼테르는 즉시 움직였다. 사건 기록을 분석하고, 지식인들에게 팸플릿을 보내 여론을 조성했다. 1763년 『관용론』을 출판했다.
"교리가 적어야 논쟁이 적어지고, 논쟁이 적어야 불행이 적어진다" 3년의 노력 끝에 1765년, 칼라스는 사후에 무죄가 인정되었다. 한 사람의 펜이 한 사람의 명예를 되찾아 주었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것을 말할 권리는 목숨을 걸고 지킬 것이다."볼테르의 이 말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었다.
이는 차이를 소극적으로 묵인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 그 자체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다.
자신과 다른 믿음, 다른 사상, 다른 삶의 방식을 지닌 이들을 시민으로 받아들이는 것. 처칠은 "전쟁할 때는 과감하고, 승리했을 때는 관용하라"고 말했다.
여기서 관용은 단순히 패자를 너그럽게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후에도 함께 살아갈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것을 의미한다.
관용은 개인 차원에서도 필요한 덕목이다.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Gordon Allport)는 『편견의 본질(The Nature of Prejudice, 1954)』에서 "편견은 불완전한 정보에 기반한 성급한 일반화"라고 정의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익숙한 것을 선호하고, 낯선 것에 경계심을 갖는다. 내 가치관과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내 정체성과 다른 집단을 마주했을 때, 내 신념에 도전하는 생각을 들었을 때, 우리는 불편함을 느낀다.
관용은 심리적으로 "인지 부조화를 견디는 능력"이다. 이 불편함을 배척으로 해소하는 것이 불관용이고, 이해와 성찰로 승화시키는 것이 관용이다.
관용은 성급한 판단을 유보하고, 개별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이다. 즉, 관용은 불편함을 견디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 관용에도 한계가 있다.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가 제기한 "관용의 역설(Paradox of Tolerance)"이다. "불관용에 대해서도 관용해야 하는가?" 포퍼의 답은 명확했다.
"아니다." 무제한적 관용은 관용의 소멸로 이어진다. 증오와 폭력을 용인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라 방조다.
만약 우리가 불관용을 무한정 관용한다면, 결국 불관용한 자들에 의해 관용적인 사회 자체가 파괴된다.
따라서 관용에는 경계가 필요하다. 차이에 대한 관용과 타인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에 대한 불관용이다.
다시 말해, 관용은 상대가 나와 다른 신념, 다른 문화,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 상대가 타인을 해치거나 인간의 기본적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다시 교가로 돌아가서, 왜 '배운다'가 아니라 '깨우친다'고 했을까? 물론 작사하신 분만 아는 것이겠지만 -
관용은 단순히 지식으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교과서에서 관용의 정의를 외운다고 해서 관용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관용은 스스로 체득하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 나와 다른 사람도 그 나름의 이유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은 지적인 이해를 넘어선 깨달음의 영역이다.
그리고 '자유와 관용'이 함께 언급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관용과 함께할 때만 가능하다. 내 자유만 주장하고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독선이 될 뿐이다.
반대로 관용 없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관용이란 타인의 차이를 그저 '참아주는' 것이 아니다.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그 다양성 속에서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교가를 부르며 깨우쳐야 할 관용의 진정한 의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이 교가를 작사한 원흥균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지식을 배우는 것을 넘어,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스스로 깨우치는 사람이 되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