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아산 외암마을 예안이씨 참판댁 유물 기획전시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아산 외암마을 예안이씨 참판댁 유물 기획전시
  • 유규상 기자
  • 승인 2026.04.07 0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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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부터 대한제국 시기까지 이어온 황실과의 교류 및 선비의 굳건한 지조 조명
4월 6일부터 6월 28일까지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

[충청뉴스 유규상 기자]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원장 장기승)은 아산 외암마을 예안이씨 참판댁 유물을 통해 조선 말기부터 대한제국 시기까지 이어온 황실과의 교류 및 선비의 굳건한 지조를 조명하는 기획전시 <대한제국 황실과 충청의 명가>를 개최한다.

기획전시 안내 포스터

전시기간은 4월 6일부터 6월 28일까지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되며 예안이씨 참판댁이 오랜 시간 간직해 온 대한제국 황실 하사품과 명문가의 일상 생활품 등 귀중한 유물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아산 외암마을 예안이씨 참판댁은 이원집이 명성황후의 이모부가 되면서 황실과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되었고, 이러한 긴밀한 관계는 그의 손자인 퇴호 이정렬로 이어졌다. 이정렬은 1885년(고종 22) 명성황후의 후원으로 관직에 나아가고, 1891년 증광시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규장각 직각, 궁내부 특진관에 이르며 고종을 지척에서 보좌했다.

명성왕후의 어찰

1901년(광무 5) 이정렬이 낙향을 택하여 외암마을로 돌아왔을 때, 고종은 그에게 깊은 신뢰를 담아 ‘퇴호거사(退湖居士)’라는 호를 내렸다. 특히 영친왕에게 명하여 퇴호거사와 ‘일심사군(一心事君: 한마음으로 임금을 섬기다)’이라는 글씨를 직접 써서 내려주도록 할 만큼 인연이 각별했다.

이정렬은 1907년(광무 11) 고종의 강제 퇴위 이후 온전히 낙향하여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왕조의 전통을 고수하였으며, 신식 학문과 단발을 반대하고 일본에서 벼슬을 구하지 말 것을 강조하며 끝까지 선비의 지조를 지켰다. 이러한 참판댁의 유물은 격동하는 시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충청 명문가의 신념과 묵직한 시대의 숨결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영친왕이 쓴 퇴호거사 현판

이번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대한제국 황실과 충청도 명문가의 역사적 교류와 굳은 신념을 유물을 통해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전시 기간 동안 충남 공주 지역의 벚꽃이 만개할 것으로 예상되어, 봄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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